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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시사

성욕과 쾌락의 산물인 동성욕은 동성애와 구별되어져야 합니다

by gobusi 202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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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과 쾌락의 산물인 동성욕은 동성애와 구별되어져야 합니다.

저는 동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태어난 자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과
미안함도 가지고 있지만

동성애란 표현 안에 성욕과 쾌락을 추구하기위한 동성애, 동성욕은 찬성할수 없습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동성욕에 휩싸여 있는 현상을 자주 내비치곤 합니다.

육체적 끌림을 통한 동성애의 시작이
있는 동성애자들을 반대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퀴어축제.
사진만 봐도 이해할수 없는 변태적 복장. 그걸 혐오가 아닌 사랑으로 봐달라는 이유가 무얼지.

제 주위에 동성애자 두명을 조금은 멀게 안적이 있습니다.

한 친구는 모임 같은 곳에서면 온통 성적인 이야기로 주위의 남성들을 곤란하게 했습니다.

본인은 재미있어 하면서.
어떤 남자를 만나 어떤 관계를 가졌고 어디서 누구를 또 만나고 또 어떻게 사귀고 관계를 가졌는지가 그에게는 동성애에서 제일 중요해 보였습니다.

조금은 다르게 한 동성애자는 어머니의 핍박에 여자 혐오증에 걸려 남자를 사랑한다 합니다.

그에게서는 단한번도 육체적 관계에 대해 들은적은 없었지만 그에게서는 굉장히 힘든 내면적 아픔이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끼나 능력적인 면에서 홍석천씨를 좋게보지만, TV에서 농담조로 던지는 남성을 향한 귀태? 또는 몸을 원한다는 표현들은 쾌락적 성욕의 표현으로 다가올때가 많아 좋게 보이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동성애자 중 육체적 쾌락에 빠진 자들이 말하는 동성애를 사랑이라 부를수 없는 이유는, 사랑 이란 표현 아래 너무나 많은 성욕 그리고 육체적 관계나 쾌락적 요소를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퀴어 축제에서 보이는 변태적 복장은 결코 사랑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수십명 또는 수백명과의 육체적 관계를 당당히 말하는 그런것에 대해 동성애를 인정하라 한다면 저는 결단코 반대를 할 것입니다.

성경을 빗대어 그들을 사랑하라는 분들께, 예수님이 창녀를 불쌍히 여기신 부분을 말씀하시는 분들께,

예수님은 그들의 회개함을 받아주고 불쌍히 여기심에 죄사함을 허락하고 그들이 다시 죄에 빠지지 않는 사랑을 주신것이지

창녀짓이나 쾌락을 위한 죄를 인정한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함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것과
사랑한다고 동성애를 인정해야한다는것 특히 육체적 성욕에 빠진 동성욕자들을 인정하라는 법은 오히려 역차별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느끼는 사랑, 동성애.
어쩔수 없는 아픔. 그들에게 동성욕자들은 오히려 위로받아야 할 동성애자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생각합니다.

동성애를 말하며 동성욕과 쾌락에 빠진자들. 그리고 무조건적인 육체적 관계를 원하는 동성욕자들과 동성애자는 분리되어 판단돼야 합니다.

동성욕, 양성욕등은 쾌락의 산물이지
그곳에 사랑이란걸 붙여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동성애자의 매우 많은 경우가 동성욕이라면, 이런 상황은 고쳐지거나 절제가 되어야지 차별법이라는 명목하에 인정되어져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동성욕과 동성애가 구별되어져야,
아픔을 겪고 있는 실질적인 동성애자들이 위로 받을수 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오늘부터 저는 동성욕의 쾌락과 타락을 반대합니다.

다만, 선천적 동성애를 가진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으신 분들의 아픔에는 위로함과 그리고 정체성을 잘 찾아갈수 있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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